라벨이 Louvre Museum인 게시물 표시

Trip to France - Musee de Louvre : The Code of Hammurabi

이미지
The Code of Hammurabi : Richelieu 0F <The location of the Code of Hammurabi : Richelieu 0F> 1. 이란 국립 박물관과 루브르, 두 개의 함무라비 법전 테헤란의 이란 국립 박물관에는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고대 바빌로니아의 중요한 유물이 있습니다. 바로 '함무라비 법전' 입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B.C 1792년에서 B.C 1750년경에 고대 바빌로니아를 통치한 함무라비 왕이 282개의 법 조항을 설형 문자로 기록하여 반포한 법전입니다. 세계 4대 문명중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를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왕이 지배했을 때 현재 이란 남부 지역에 엘람이라는 고대 왕국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엘람 왕국은 B.C 2700년부터 B.C 539년까지 "수사"를 수도로 하여 오늘날의 이란 파르스와 후제스탄 지역에 위치했던 고대 왕국으로 2,200년의 역사를 시기에 따라 원시 엘람, 고 엘람, 중 엘람, 신 엘람 시대로 구분합니다. B.C 1350년에서 B.C 1100년은 '중 엘람' 시대로 슈트루케스 왕조 (B.C 1210~1100) 시대에 제국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며, B.C 1185년에서 1155년까지 엘람을 통치했던 ' 슈트룩-나흐훈테 (Shtruk-Nahhunte)' 왕은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로니아를 점령합니다. <Babylonia at the time of Hammurabi, Source-1> 바빌로니아를 점령한 슈트룩-나흐훈테는 B.C 1175년에 바빌론에 있던 함무라비 법전을 엘람 왕국의 수도인 '수사' (현재 이란의 슈시)로 옮긴 후 함무라비 법전은 역사의 흐름 속에 그 행방을 감추게 됩니다.  <Elam : Red Shading, Source-2> <The Location of Babylon> ...

Trip to France - Musee de Louvre : The Raft of the Medusa

이미지
The Raft of the Medusa : Denon 1F, Exhibition Hall No. 700 <DENON 1F Hall No. : 700, The Raft of the Medusa> 1. 메두사의 뗏목 (Le Radeau de la Meduse) 1816년 44개의 대포로 무장한 프랑스 해군 전함 '메두사 호'는 프랑스 본토를 출발하여 아프리카의 세네갈로 향합니다. 전함의 출항 목적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영국에게 점령당했던 세네갈을 영국이 프랑스에 반환함에 따라 과거 식민지 영토를 되돌려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함장은 왕당파 귀족 '위그 드루와 쇼마레'로 소위 줄타기로 연명해 온 장교였기에 경험이 매우 미천했고, 은퇴 후 수년간 항해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함장으로 임명됩니다. 이것이 세네갈로 향하는 '메두사 호'의 항해에 영향을 미쳤는지 결국 메두사 호는 7월 2일 대서양의 캡 블랑크 (Cap Blanc) 근처에서 엄청난 풍랑에 휘말려 모리타니아 앞 160km 지점의 아르갱 모래톱에 걸려 좌초되고 맙니다. 가까스로 암초에서 벗어나는데는 성공하지만 이미 심하게 손상된 전함은 침몰을 피할수 없었고 이때 함장이었던 쇼마레는 믿을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총 400 여명의 승무원 중 하급 승무원 149명을 침몰하는 배에 버려둔 채 6개의 소형 보트와 린치 (대형 보트)에 나눠타고 탈출해 버립니다.  <The Raft of the Medusa : Theodore Gericault, 1817~1820년> 침몰하는 배에 버려진 149명의 승무원들은 전장 20미터에 폭 7미터 짜리의 뗏목을 만들어 간신히 목숨을 건지지만 그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바닷물에 젖은 비스킷과 소량의 포도주뿐이었습니다. 좁은 뗏목 위에 간신히 버티고 있던 149명의 조난자들은 얼마있지도 않던 식량이 고갈되어 가고, 거친 격량에 뗏목이 부서져 동료들이 익사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공포와...

Trip to France - Musee de Louvre : Squatted Scribe

이미지
Squatted Scribe : Sully 2F, Exhibition 22 <Sully 2F, Exhibition No. : 22> 1. 이집트 서기 좌상 (Squatted Scribe) 루브르 쉴리관 2층, 파라오 시대 이집트 유물을 연대기 순으로 관람하다 보면 눈에 띄는 놀라운 전시물이 하나 있습니다. 제작 연도만 B.C 2620 ~ B.C 2350년경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 누가 제작했으며, 작품의 모델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전혀 알려진 게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집트 서기 좌상 (Squatted Scribe)"이라 불리는 전시물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찰나의 순간에도 느낄 수 있는 조각상의 놀라운 생동감 때문입니다. 이집트의 사후 세계관은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영혼인 "바 (Bar)"는 사후 세계로 가게 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육체인 "아크 (Akh)"로 돌아와 되살아난다고 믿었기 때문에 죽은 사람을 미이라로 만들어 온전한 육신을 보존하게 됩니다.   <Squatted Scribe : Sully 2F, Exhibition No. 22> 석상이 제작된 시기인 기원전 2600년경은 이집트 고왕국 시대로 죽은 자의 부활을 위해 만들던 미이라조차 육체의 유한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에 돌로 만든 조각상을 무덤 안에 같이 넣던 시기입니다. 돌로 만들어진 조각상은 미이라와 달리 매우 튼튼했고 살아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할 수 있어 조각상의 주인공이 사람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사후 돌아올 수 있는 "아크 (Akh)"와 더불어 사람들의 기억 또한 중요시했는데,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사람은 육체가 죽어도 죽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Papyrus and Scribe> "인물상의 모델이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파피루스에 무엇인가를 적는 모습...